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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14:30) from 211.216.134.58' of 211.216.134.58' Article Number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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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골퍼 뒤엔 아빠가 있었다  (2001.09.24)=조선

女골퍼 뒤엔 아빠가 있었다  (2001.09.24)=조선





LPGA 우승 박세리-김미현-박지은-펄신-박희정...
캐디-매니저로...직장 그만두고 딸 뒷바라지

국내 여자프로골프 시즌 11번째 대회인 스포츠토토여자오픈 최종 라운드가 열린 지난 21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골프장.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고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찬바람이 불었지만 선수들은 막판 순위 경쟁에 안간힘을 쏟았다. 아마추어인 이미나(20·용인대2)가 2년 연속 상금왕을 차지한 프로 정일미(29·한솔CSN)와의 연장 대결에서 승리하자 캐디가 더 기뻐했다. 그의 눈에는 이슬까지 맺혔다. 캐디는 바로 이미나의 아버지 명우(47)씨였다.
“저도 한때 의류사업으로 돈깨나 만졌죠. 하지만 공장을 새로 짓자마자 IMF사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사업은 부도가 났습니다. 옷 한 벌 제대로 사주지 못했는데….”

미나가 중2 때 골프를 가르치기 시작한 이씨는 고민 끝에 새로운 직업을 포기하고 딸의 골프 인생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오전 6시30분에 시작해서 오후 8시가 넘어야 끝나는 딸의 훈련 일과가 바로 ‘무직’인 이씨의 하루 생활이었다.

18번홀 주변에 있던 ‘아저씨’들은 이씨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넸다. 딸을 대회에 내보낸 ‘아버지 부대’였다. “누구는 좋겄네(좋겠네).” 이미 골프계에서 ‘아버지 캐디’로 소문이 난 박문식(57·사업)씨의 부러움 섞인 탄식이 터졌다. 박씨의 딸 윤숙(25)은 국가대표를 비롯해 아마추어 시절 촉망받던 선수였다. 하지만 프로에 와선 그다지 눈에 띌 만한 성적을 못 냈다. 99년 프로가 된 뒤 지금까지 벌어들인 총상금은 2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대회장 근처에서의 숙박비를 포함해 1년에 3000만원 가량 깨지는 비용만 생각해도 ‘밑지는’ 장사다. “프로골퍼 만드는 데 4억원 정도 들어간 것 같다”는 박씨는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달 초 열린 익성배주니어골프대회에 출전한 박주희(15·남성여고1)의 아버지 춘길(50·사업)씨는 ‘슬리퍼’를 신고 매일 10㎞의 레이크사이드CC 언덕을 누비고 다녔다. 지난 5월 받은 디스크 수술 후유증으로 운동화나 구두를 신을 수 없고, 의사도 “병원에 누워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딸을 응원하려고 무리를 했다. 주희는 지난 8월 중앙CC배 MBC주니어골프최강전 여고부에서 우승한 ‘기대주’다. 박씨의 맏딸 주미(19)도 프로골퍼가 됐다. 박씨가 두 딸을 골프에 입문시킨 이유는 “재산을 물려주면 언제 날릴지 알 수 없지만 골프를 가르쳐 놓으면 평생 자기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는 “US여자오픈 챔피언 박세리를 포옹하던 박준철씨가 무척 부러웠다”며 “내 딸들이 정상급 골퍼가 되도록 뭐든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딸에게 골프를 시키는 아버지들이 노리는 마지막 무대는 미국LPGA(여자프로골프협회) 투어다. 박세리(24), 김미현(24), 박지은(22), 펄 신(34)이 구축한 ‘코리안 챔피언 서클’에 박희정(21)이 가세하면서 한국은 미국, 스웨덴과 함께 ‘LPGA투어 빅3’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LPGA투어 ‘한국인 챔피언’들은 미국이나 스웨덴 선수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늘 아버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 우승은 못했지만 한희원(23), 장정(21), 하난경(30)도 아버지와 함께 미 대륙을 뛰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했거나 배웠다. 유명 프로가 된 지금도 아버지들은 코치 겸 캐디로, 매니저로, 또는 전속 운전사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의 아버지들을 미국에서는 ‘골프 대디(Golf Daddy)’라 부른다. 94년 월드컵 축구를 앞두고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던 ‘사커 맘(Soccer Mom)’ 열풍에 빗댄 말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아이를 축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온갖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는 어머니들이 등장했다. 사커 맘을 기억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골프 대디’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지난 8월 메이저 골프대회인 PGA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선두권에 올라 공식 인터뷰 자리에 앉은 최경주에게 미국기자들이 던진 첫 질문이 “아버지가 골프에 어떤 도움을 주었느냐”였을 정도다.

사실 아버지가 운동선수인 딸을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하는 모습은 외국에선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래서 박세리가 98년 US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켰을 때 외국언론의 관심은 아버지 준철(51)씨에게도 많이 쏠렸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스승은 아버지”라고 한 박세리의 말 때문이었다. 프로도 아닌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운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으니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박씨는 성공한 ‘골프 대디’ 1호인 셈이다.

김미현의 아버지 정길(54)씨는 지금도 딸의 코치이자 운전기사, 매니저로 1인 3역을 해내고 있다. 부산에서 신발공장을 운영하던 김씨는 딸을 뒷바라지하다가 잘 나가던 사업까지 접어야 했다. 하지만 딸의 성공으로 다른 ‘골프 대디’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역시 싱글핸디캐퍼인 그는 딸의 그날 컨디션, 문제점, 홀별 진행상황 등을 프로기사의 복기(복기) 실력 뺨치게 기억한다.

박지은의 아버지 수남(54)씨는 서울 강남의 유명 갈비집 삼원가든 오너다. 하지만 그는 사업보다 둘째 딸의 로드 매니저(Road Manager) 역할을 하느라 더 바쁘다.

올해 LPGA 신인왕 등극이 유력한 한희원의 아버지 영관(52)씨도 마찬가지. 상당한 재력가인 한씨도 딸의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함께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 한희원은 올해 풀 시드를 받지 못해 거의 대부분의 대회에서 월요 예선을 뛰어야 했다. 몇 달간 쉬지 않고 강행군하는 바람에 지난 7월에는 부녀가 바이러스성 장염으로 나란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2년 동안의 ‘밑바닥’ 생활 끝에 지난 10일 외동딸 박희정의 투어 첫 승을 지켜본 승철(46)씨. 그는 딸의 우승을 기뻐할 틈도 없이 이틀이 걸릴 2000마일 대륙횡단에 나서야 했다. 미국 중부인 오클라호마에서 다음 대회 장소인 서부의 포틀랜드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 딸만 먼저 비행기로 보내고 박씨 부부는 중고 밴을 끌고 나섰던 것이다.

( 조정훈기자 donjua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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