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영동산불…불타버린 생태계 현장

 

6400㏊의 산림이 불 탄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18일 오전 해발 400여 의 야산 정상에 오르니 불에 타 시커멓고 누렇게 변한 나무들이 산 능선을 따라 한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산오리나무와 굴참나무가 눈에 띄었을 뿐, 대부분은 숯기둥처럼 검게 타버린 15~40년생 적송들이었다. 산불이 바람이 부는 대로 몰려간 듯 탄 모습이 일렬로 나타났지만, 강풍을 피해 살아남은 초록색 지대도 드문드문 보였다.

서울대 농생대 이돈구 학장은 『푄현상으로 태백산맥을 넘어온 바람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초속 26 /sec의 강풍으로 변해 피해가 커진 것』이라며 활처럼 휜 채 죽어버린 소나무 가지를 가리켰다. 또 산이 드문드문 탄 것은 해안을 따라 기압이 급속하게 변해 서풍, 북서풍, 남서풍 등 여러 갈래로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라는 것.


사진설명 : 96년 고성 산불로 피해를 본 뒤 자연복원 방법으로 4년 만에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있는 고성군 죽왕면 구성리의 숲. / (최순호기자 : shchoi@chosun.com)


능선과 비탈면일수록 산은 시커먼 색깔을 더 잘 드러냈다. 산불이 낙엽 등 유기물들을 태우면서 땅을 검게 태운 것이다.

소나무 천연림이 크게 불 탄 동해시 천곡동 야산도 사정은 마찬가지. 소나무 사이사이의 땅은 잡초 한 포기조차 없는 숯구덩이로 변했다. 이 교수는 그래도 당장 내년엔 잡초대신 참산부추, 싸리, 억새, 참취, 고사리 등 1년생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검은 색은 뒤덮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장은 그러나 『우리 땅에 가장 자생력이 강한 참나무조차 산불난 곳은 5년이내는 뿌리를 못내릴 정도로 황폐화되고, 화재 이전 상태로 복원되려면 최소 5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안타깝게 말했다.

아직 산불의 매캐한 냄새가 가시지 않은 강릉시 사천면 석구마을. 해발 203 의 수릿골에서 내려다보니 온통 소나무밭이었다.

강원산림개발연구원 전두식 연구원이 소나무 밑 검은 땅을 파니 이내 지렁이와 곤충류가 죽은 것이 나타났다. 『96년 고성산불 피해지역의 경우에도 3년이 됐어도 지렁이 등이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산불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그는 산불이 나면 섭씨 150도가 넘는 화력이 땅속에도 미쳐 지렁이와 미생물들을 모두 죽인다고 설명했다. 산불이 난 첫 해에는 그나마 불의 영향이 크게 미치지 않은 땅속 2~5㎝ 깊이에 있는 미생물이 토양을 분해시키는 최소 역할을 할 수 있으나, 그대로 방치하면 미생물이 모두 죽어 산도, 들도 모두 건조해져 사막화 현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 연구원은 분석했다.

96년 고성 산불 직후 소나무와 자작나무로 조림한 지역에 다시 산불이 덮친 고성군 죽왕면 운봉리지역의 생태계 파괴는 더 심했다. 3년간 쌓여 영양분으로 활용될 유기물들이 불길에 모두 탄 뒤 바람에 날아가 노출된 마사토가 흘러내리는 현상이 관찰됐다. 땅을 파헤치자마자 바로 암석층이 드러날 정도로 생태계 복원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곳도 있었다. 4~5년생 소나무 묘목들은 대부분 불에 그을려 수분이 줄어든 반면, 같은 수령(수령)의 자작나무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자작나무 줄기를 잘라 본 전 연구원은 『수분이 일부 빠져나가 메말라 있지만 소생가능성은 소나무보다 크다』며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계곡마다 최근 극심한 가뭄 탓인지 물이 보이지 않았다. 한일야생생물연구소 우한정 소장은 『계곡엔 평시 맑은 물이 흐르겠지만 화재로 수분이 줄어 계곡물이 크게 줄 것』이라며 『폭우시에는 검정색 탄화 부유물을 많이 함유한 물이 흘러내려, 인근 하천에 부영양화 발생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쉬리 등 물고기 대신 붕어들이 하천을 점령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 삼척=김동섭기자 : dskim@chosun.com)
( 고성=최재혁기자 :
jhchoi@chosun.com)